못다 핀 희망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상징 노회찬!
기사입력 2018.07.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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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면서 갖은 고난에도 ‘불법’에 엄격하기만 했던 노회찬!

 

자신에게 씌워진 ‘불법’이라는 의혹의 굴레가 치욕스럽고 견디기 어려웠을 '노회찬'. 한 결 같이 서민의 편에서 ‘빛’을 높이 든 그의 자취가 이제 더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기수를 마다하지 않던 그를 무엇이 그토록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는지, 그의 고뇌가 쉬 짐작되지도 않아 애잔하고 허망하기만 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노 의원은 검찰과 대기업 등 유착비리를 파고드는 불법자금 저격수로서, 거대 권력과의 싸움에 한 치의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 정치행보로 국민들의 시선을 끌었다.

 

노회찬.jpg

 


2013년 이른바 '삼성X파일' 폭로가 대표적으로, 삼성으로부터 ‘떡값’이란 명목의 스폰을 받은 검사 7명 이름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형이 확정되었다. 노 의원은 이를 계기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지만, 그가 지향하는 정치의 본질이 정의이자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상식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불법에 엄격한 잣대를 가진 그가 한 순간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지 않은 정치자금으로 인해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몸부림치던 그의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


노 의원은 유서에서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천만 원을 받았으나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게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자책했다.


그는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누를 끼쳤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며 죄책감을 드러냈다. 그것이 바로 노 의원과 당이 그간 지켜온 책임윤리를 보호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았던 노 의원 관련 사건은 엄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피의사실이 공표됐다. 공인으로서 의혹에 대한 책임감은 분명 무겁다 하겠지만 비상식적인 수사관행이 얼마나 큰 인격살인을 벌일 수 있는지 그 여지에 대해서는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 3선 의원 노회찬!

 

13년간의 투쟁 끝에 복직한 180명의 ‘케이티엑스(KTX) 승무원’에게 끝내 축하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노 의원은 지난 23일 상무위원회에서 KTX문제와 더불어 10년 넘게 갈등을 빚은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가 조정 합의에 이른 점에 대해서도 본인의 뜻을 전할 계획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노동자와 서민의 낮은 자리에 머물며 우리 사회에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노회찬. 그가 못다 피운 진보정치의 희망을 누군가는 올곧은 신념으로 짊어지고 나아가기를 원했던 그의 말은 이제 산자의 몫으로 남았다.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Editorial Dept. 기자 webmaster@worldy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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