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장유 “우리 아들, 좋은 데 가서 다시 태어나”

기사입력 2013.07.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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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감정을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기쁘고, 슬픈 감정에 이입하려 애쓰지 않아도 슬픈 무대. 연극 <행복해, 장유씨> 무대에 선 배우 이장유는 큰아들의 실제 죽음을 소재로 관객들 앞에서 감동을 전달한다.

연극인생 약 30년 동안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뜻 깊은 작품을 만난 것과도 다름없는 탓에 이장유의 마음은 무대에 설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주 무대는 행복한 화원이다. 화원을 3년째 꾸리고 있는 장유는 아들의 23번째 생일을 맞아 기분이 들떠 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아들을 기다리면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손님들을 맞기에 바쁘다.

수시로 짜장면 값을 달라며 찾아오는 중국집 배달원과 물량이 줄어서 불만인 택배업체 직원 등 장유는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오가는 이들의 동정을 공유하기 바쁘다. 그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준비해 둔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아들의 생일축하 노래를 홀로 부르기 시작한다.

   
연극 <행복해, 장유씨>,  큰아들의 실제 죽음을 소재로 관객들 앞에서 감동을 전달하는 배우 이장유

“큰아들이 카메라 만지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어요. 내 공연 때 음향 편집까지도 했어요. 큰아들이 어느 날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서 미국으로 한 5년 갔다 와야겠다고 했어요. 아빠는 월세라도 원룸 하나 있으면 되니까 가라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말고 5년간 영화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3년 전에 미국으로 보냈어요.”

이장유의 큰아들은 2010년 미국 LA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두 살 어린 한인 유학생과 호칭문제로 싸우다 급작스럽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주먹다짐 두어 번 한 것인데 교무실로 이동하던 중 몇 발짝 걷다 풀썩 고꾸라졌다고 한다.

“아들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48시간 만에 미국에 도착했어요. 장기기증 얘기가 오가면서 큰아들의 생이 점차 마무리되는 분위기였어요.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아들을 보면서 부른 노래가 생일축하 곡이에요. 좋은데 가서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는 의미였죠. 그 노래를 백 한 번 부르고 산소 호흡기를 뗐는데 아들의 맥박이 떨리더라고요.”

일곱 살 때까지 엄마 젖을 먹은 것, 새빨간 장미를 좋아했던 것,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가 난 일화 등 이장유는 큰아들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선 그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딴판이다.

그는 관객들을 화초삼아 분무기 뿌리는 시늉을 해서 놀래켜는가 하면 자신의 첫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특정 관객을 직접 이야기에 참여시켜 보는 이들을 박장대소하게 한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보여준 모습 이상의 다양한 매력도 찾아볼 수 있다.

연기에 노래와 춤까지 더해가며 숨겨둔 최대한의 끼를 발산한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나머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절절한 그리움이 드러나는 후반부부터 흥은 하강한다. <행복해, 장유씨>는 한 편의 극이자 이장유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웃음 뒤에 맞는 슬픔이 더욱 크다.

“아들을 미국에 보내기 전에 가족사진을 찍고 공항으로 갔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자꾸 눈물이 나서 차를 세우고 삼십 분 울고 아들 물건 붙잡고 다시 또 울었어요. 작은 아들이 ‘형 좋은데 가는데 왜 우느냐’고 묻더라고요. 일이 이렇게 될 거라서 마음이 그렇게 아팠나 봐요.”


평생의 오픈런 공연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함 찾는 무대가 되기를”

당시 이장유의 큰아들 사건은 ‘장기기증’ 얘기로 미국과 국내 언론에 화제가 됐다.
“미국 도착한 지 1시간이나 지났나.. 병원에서 호흡기를 떼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장기기증 얘기도 순식간에 돌았고, 현장에 있던 취재기자들로부터 언론에 기사화됐어요. 그런데 현지에 있던 한인 뇌전문의가 와서 아들의 상태를 보고는 장기기증 절차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면서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한국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LA의 한 성당에서 큰아들의 장례를 먼저 치른 그는 돌돌 만 지폐를 건네주신 신부님과 커피와 샌드위치를 대접해준 교민, 잠자리를 제공해준 한인 등 힘든 상황에서 받은 도움의 손길들을 기억한다.

“아내와 함께 아들의 장례 때 입힐 옷을 사러 시내에 갔는데 교민들이 TV에서 봤다면서 집사람을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위로도 해주시고... 그 때 힘을 주신 고마운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힘을 내야죠. <행복해, 장유씨>는 대본을 만들기까지 마음 속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슬픔을 희망의 메시지로 치환해서 얘기하려고 해요. 무대에 설 때마다 아들에게 제사지내는 마음으로 연기할 거예요.”

이장유는 극단 단원들과 함께 소극장과 지방 야외무대 등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올해부터는 영화와 드라마 연기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누구나 이웃과 친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늘 곁에 있지는 않아요. 가까이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작품을 통해 그러한 의미들을 함께 찾았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은 제가 죽을 때까지, 평생 오픈런으로 공연할 겁니다.”


[차효진 기자 hjcha@worldy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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